‘그런 날도 있지’ 하는 날의 그런 날이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다들 어떤 날인지 아시죠?
해야하는 일은 쌓여가고 원하는대로 풀리진 않고, 다른 사람들은 척척 풀어내는 것 같고..
신입때는 그런 날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아와 괴롭혔는데 일 년, 이 년이 넘어가니 점점 무뎌져가더라구요.
업무 중에 정말 풀고 싶었던 문제가 있었는데 주말에도 시간을 내어가며 깨어있는 시간동안 고민해도 생각처럼 안되던 문제를 옆에 있던 동기가 결국 풀어낸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좌절감과 우울감이 몰려왔습니다.
오랜만에 겪는 감정이라 오히려 좋아, 이걸 글감으로 써보자(?!!) 싶었습니다. 번아웃을 주제로 쓰면 될까? 하지만 제가 보기에 저는 번아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번아웃이 올 정도로 열심히 일하진 않았거든요.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남들은 스트레스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task를 스트레스로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 쉽게 영향을 받고 작은 자극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로 인해 더 예민해지는 저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이렇게 개복치같은 성격으로 어떻게 스트레스 상황이 가득한 개발자 생활을 3년 가까이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지 (?!) 정리를 해봐야겠습니다.
예민한 성격
예민한 성격이란 어떤 성격일까요?
먼저 ‘예민하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예민하다’
- 【…에】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위의 정의에서도 보다시피, 예민하다는 것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날카롭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예민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1995년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박사가 도입한 개념으로서 생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내, 외부적으로 더 많은 자극을 받는 이들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예민한 사람들은 뇌의 구조상, 높은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높고 불면증 등의 정신적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적지는 않지만 전문자로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혁신적이면서도 공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팀을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HSP만의 특성을 반영하여 스스로 예민한 사람인지를 구별해볼 수 있는 신호 14가지)
예민한 개발자, 어떻게 살고있죠?
이 험난한 직장 생활, 그것도 작은 실수 하나에 되던 것도 안되고, 안되던 것도 되버리는 이상한 개발 나라에서 저같은 예민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매일 울면서 퇴근하고 심장이 뛰어서 아침에 일어나던 생활을 약 일 년정도 하다보니 이젠 나름의 해결책이 생겼습니다. ㅎㅎ
나름의 해결 방법
1.업무 스트레스로 압도당하는 기분이 든다면
저는 특히 ‘내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문제가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 극강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않죠.
그래서 먼저 마인트 컨트롤
이 필요합니다.
- 마인드컨트롤
저는 회사에서 팀으로 일했기 때문에 가장 첫번째로 필요했던 마인드는 “개인전이 아닌 팀전임을 기억하자”입니다. 내가 맡은 일은 무조건 내가 끝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남들에게 도움을 잘 요청하지도 못했고, 다른 사람이 말없이 도와주면 고마우면서도 스스로에게 분한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남이 잘 아는 것은 충분히 부러워하고 고마워하고, 더 공부해서 내것으로 체득하면 되는 겁니다. - 한 놈만 팬다
업무의 사이즈가 좀 있다면, 일단 단위별로 나눈 뒤 한 놈(?!)만 고릅니다. 그리고 그 날 하루는 그 녀석만 처리합니다. 만약 빨리 처리해서 다른 녀석도 처치하는데 다 못하고 퇴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 그냥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합니다. 오늘 저의 메인 빌런 한 놈은 처리했으니까요! 룰루! - 태스크를 민망할정도로 작게 쪼갠다
여기서 포인트는민망할정도로
작게 쪼갠다는 겁니다. 체크리스트에 적는게 더 오래걸릴수도 있겠다, 하는 정도로 쪼갭니다. 저는 일을 시작할 때에는 늘 백지에서 시작하는 기분,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에 탄 기분이 드는데 이렇게 자잘하게 쪼개놓으면 업무를 시작할때 압도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체크박스에 체크할 때 희열은 덤!
2.업무 외적으로 잔잔하게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 운동
사실 저에게 운동은 업무 스트레스가 극도에 치달아있을땐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럴땐 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진 운동을 해도 머릿속에서 문제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업무 외적으로 매일 잔잔하게 겪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운동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단 운동이 너무 힘들면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 머리가 깨끗해지고(??) 일상이 단순해집니다. 일상이 단순해진다는건 그만큼 다른 곳에 쓰일 에너지가 적어진다는 뜻이므로 모든 자극이 스트레스인 예민한 사람들에겐 굉장한 이점입니다.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울지 않는 이유 그리고 웨이트를 하면서 무게를 올릴 때 굉장한 성취감이 듭니다. 개발 공부는 성장하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바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중량은 눈에 바로바로 보이기 때문에 성취감과 자신감이 함께 올라가는 장점이 있습니다. (주의.운동이 마음처럼 안되면 또 자괴감이 몰려오는건 어쩔 수 없는 예민인의 숙명,,)
- 고정스케줄 만들기
위의 내용과 약간은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예민한만큼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늘 달고 사는데 이럴 때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뭐든그냥 하는 것
입니다. 남들보다 지식이 부족해서 불안하다면 일단 그냥 공부를 합니다. 체력이 부족해서 오래 일할 수 없을것 같아서 불안하다면 그냥 운동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 무슨 일이든 그냥 바로 할 수 있는 고정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 시간이 바로아침 6시 반부터 출근하기 전 9시 반까지
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바로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냥 꾸준히 무언가를 그 시간에 하는 겁니다.
한 달, 두 달, 일 년을 넘어 약 3년이 되니 이렇게 쌓인 시간이 저에게안정감
을 주었습니다. 이 시간들은 ‘나는 그래도 계속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이다’라는 칭찬과 격려를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일종의 증거인 셈입니다.
그리고, 굳이 아침일 필요도 없고, 혼자일 필요도 없습니다. 올 해부터는 회사에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주중엔 스터디를 하고 주말엔 격주로 모여 모각코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고정적인 스케줄이 있으면 내가 늘어지고 하기 싫은 날이어도 무조건 나가게 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남죠?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머쓱)
하지만 글을 쓰면서 의외로 저의 예민한 성격이 개발자로서 좋은 점도 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더 사려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업무에 있어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점들을 빠르게 캐치하는 부분도 확실히 뛰어납니다.(라고 생각합니다 ㅎ)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을 스스로가 더 케어할 수 있다면 예민함
은 더이상 단점이 아닌 무기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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