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SI 개발자의 퇴사 회고
SI에서 얼레벌레 머리깨며 살다보니 4년차 개발자가 되었다.
근데 약속의 3년은 어딨죠..?
왜 떠나는가
1. 어느덧 4년차. 나는 여전히 말하는 돌멩이인걸요
회사에 계속 있다보면 점점 업무에도 익숙해지고 웬만한 이슈는 스스로 처리할 줄 알게된다. 그래서 제법 쓸만한 개발자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우물 밖을 떠나 다른 우물에서 온 개구리들과 비교해보니 나는 너무나 작은 곳에 갇혀서 내 우물만 보고 세상은 다 안다고 착각한 것 같다.
회사에서는 다른 곳에 있는 비슷한 연차의 개발자들과 비교해보면 이 곳의 개발자들이 잘 하는 편에 속한다고들 말했다. 하지만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정말 찍어먹어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믿지 않았다.
글또에서 만난 개발자들이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비슷한 연차의 개발자들을 보면 “생각하는 문제의 깊이” 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의 문제일까, 나의 문제일까
다른 4년차 개발자들과 나의 차이는 어디서 나온걸까?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뭔가 이슈가 있거나 공부할만한 키워드가 있어도 깊이있게 공부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에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또 다른 문제는 도전적인 과제를 선뜻 할 수 없는 환경
에도 있다. 잘 돌아가는 코드를 헤집어 엎으라는 건 물론 반대다. 그러나 문제가 보여도 이미 돌아가고 있으니 클라이언트에서 말이 나올때까진 그냥 넘어간다거나 개발 환경을 더 개선할만한 점이 분명 있음에도 그 시간에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하거나 일정이 밀리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를 도와주러 가는게 더 낫다는 인식이 업무를 소극적으로 대하게 만드는 환경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2. SI에 대한 편견, 나는 깰 수 있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개발할 것이다”, 라는 것은 진실인 동시에 외부에서 SI를 바라볼 때 가지고 있는 편견
이지 않을까. 근데 나는 과연 이 편견을 꺨 수 있을까?
내가 지금처럼 SI에 계속 있는다면 이러한 방어적 태도 가 더 강해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늘 ‘왜’ 라는 물음을 가지면서 내 스스로가 납득이 될 때까지 내가 하려는 행위의 목적, 당위성
을 먼저 알고 일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냥” 또는 “고객이 이렇게 하란다” 는 식의 피드백만 얻고 더이상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일을 하려니 속에서 답답함이 밀려오기 일쑤였다.
3. 사실 회사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제일 크다. 회사가 편해져버렸다. 회사가 싫을 때에는 이직하지 말자 가 신념인데 지금은 회사가 정말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여기 말고 다른 곳은 못가는거 아냐..?
“프로그래머의 길, 멘토에게 묻다”(데이브 후버) 책에서 가장 뒤떨어진 이가 되라
는 말이 있다.
나도 분명 모든게 어렵고 모르던 시기가 있었는데 2년이 지나니 어느덧 회사에서는 대표님을 제외하고 가장 연차가 높은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생각한 이 방법이 정말 최적의 방법일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했을때 나올 수 있는 이슈나 사이드 이펙트는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 딱히 대답을 구할 곳이 없었다.
그냥 내가 하는 것이 최선이다 믿고, 이슈가 나면 내가 처리한다는 마음으로 그냥 갈 뿐.
그러자 내 맘속에서 ‘내가 가장 못하는 사람이 되는 곳으로 가자’ 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배운 것
1.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했다
인정한다.. 나는 레벨3 꼰대로 판명됐다.. ㅎ
화가 많은 꼰대
특히나 직급을 달고 후배를 받으면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들을 많이 발견했다. 특히 내가 어떤 부분에 답답함을 느끼는구나, 그리고 나는 화가 나면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ㅎ
위에서 언급했듯 나는 “왜”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엔 당위성이 필요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필요하다면 스스로 당위성을 만들어서라도 어떻게든 납득이 되어야 한다..ㅎ) 그런데 이걸 내가 남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었다. ‘이 기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왜 필요한지를 설명을 못한다고?’ , ‘납득이 안되지만 이렇게 하라고 한다고 그냥 개발을 해?’ 라면서 나를 다그치듯 똑같이 남을 다그치고 있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화를 내지 않았고 그냥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밖에서 느끼기에는 “화가났다” 로 느껴졌나보다. 그렇다면 화를 낸게 맞지(!!!) 답답해도 회사에선 심호흡하고 침착하고 건조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겠다…
보수적인 꼰대
프로젝트에 신기술을 적용하는데에 있어서 내가 꽤나 보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새로 나온 기술이 기존 기술을 보완해서 나왔을테니 더 좋은 점이 많을 거라는 건 이해된다. 하지만 내가 주저하게 되는 포인트가 여럿 있는데,
- 아직 회사에서 신기술을 능숙하게 다뤄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예상치 못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가 쉽지않다.
- 굳이 돈 받고 제작하는 프로덕트 환경에 바로 적용할만큼 신기술이 기존 기술보다 몇 배 이상 뛰어난지 확인할 수 없다.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하기 전에 토이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것이 낫다.
라고 보는데 이건 사람의 성향에 따라 갈리는 듯 하다. 원래 내가 겁이 많은 타입이기도 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좋아하지만 이걸 비즈니스 코드에 바로 적용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건, 그 전까지는 스스로가 새로운 것을 바로 적용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를 완전 반대로 알고 있었다.
2. 좋은 동료
다행히 회사에서 좋은 동료들을 많이 만났다. 아니,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럼 내가 또라이인가..?)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얻은 점이 몇가지 있다.
🧑🤝🧑 업무는 개인전이 아니라 팀전이다.
회사 초반에는 내가 맡은 업무는 모두 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풀리지 않는 일이 생겨도 오픈하지 않고 혼자 며칠을 낑낑대며 울었다. 심지어 다른 동료가 도와줘서 해결하면 혼자서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고 질투하기도 했다. (<- 진짜 못났었다)
그런데 하루는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가 “우리는 같은 팀이고 이 일은 팀전이니까 본인 혼자는 어려워도 옆 사람과 함께 한다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다” 고 말해줬다.
이 말을 듣고 정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래,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개발 문화는 이런 것이었다. 내가 아는 것을 혼자만 아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공유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 근데 정작 내가 제일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내가 못해도 옆사람이 잘해주면 고맙다. 그리고 나도 다른 부분에서 도와줄 수 있는지 먼저 찾아보고 흔쾌히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3. 비즈니스 매너 장착
이전 회사에서는 내가 회사에서 이야기 할 사람은 사내 사람들 뿐이었다. 그래서 포멀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의 개발과 유지보수를 2년 동안 맡아 오면서 고객사 담당자분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매너를 익힐 수 있었다.
특히 메일이나 업무 전화에서는 제법 직장인의 태가 나는 것 같기도..? ㅎ
회사에 아쉬운 점
1. 마이크로매니징
마이크로매니징이 사원들의 업무 생산성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업무를 하는 중간중간에 계속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노션에 정리해야 했고, 하루에도 여러번 보고를 드려야 했다.
재택 제도가 있긴 하지만 재택 근무를 하는 인원은 그 다음 날 더더욱 철저하게 무슨 일을 했는지 숙제 검사 하듯 노션을 검사했다. 이것 때문에 재택을 하고 싶어도 스트레스 받아서 하기 싫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건 결국 회사와 직원 간의 신뢰
의 문제라고 본다. 회사가 직원을 믿지 못해서 일거수 일투족 확인할수록 직원도 회사를 믿지 못하게 된다.
뭐 그래도 좋게 생각하면 이걸 반면교사로 삼아서 나는 앞으로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
1. 깊이를 다지자
사실 회사에 대한 불만보단 환경때문에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나에게 더 아쉬움이 있다. 특히 기본기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3년이라는 시간은 더이상 비전공자라는 방패 뒤에 숨을 수 없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이제는 내 커리어에 있어서 잠깐 브레이크를 걸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달에 1개씩 프로젝트를 찍어내는 것도 충분하다. 이제는 내가 늘 아쉬웠던 부분, 예를 들어 운영체제,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네트워크 등 기반 지식을 공부하고 싶다. 그것도 진득하게..!
이번 쉬는 갭이어동안 유명하고 일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멘토링을 받고 싶어서 F-Lab을 신청했다. 엄청 떨리는데 각잡고 정말 열심히 해봐야지. 이번 기회가 커리어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가 되길..🔥
2. 시간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하고싶던 일을 하자
책과 강의
인터넷에서 좋다고 추천하는 책이나 강의는 보이는대로 다 샀다. 하지만 실제로 끝까지 본 건 거의 전무… 😇 전부는 못보더라도 이번 기회에 한 번 몰입해서 하나씩 격파해보고 싶다.
- 책
- 가상 면접 사례로 배우는 대규모 시스템 설계 기초
- 토비의 스프링
- 실전 스프링부트
- HTTP 완벽가이드
- 개발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자바 성능 튜닝 이야기
- 육각형 개발자
- 실습과 그림으로 배우는 리눅스 구조
- 데이터 중심 애플리케이션 설계
- 유연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설계 원칙
- 오브젝트
- 자기만의 트랙
- 개발자 온보딩
- 타입으로 견고하게 다형성으로 유연하게
- Release의 모든 것
- 강의
사이드 프로젝트
회사에서 써보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던 기술들이 있다. 예를 들어 JPA나 메시지큐, 도커, AWS 등등. 메모장에 그동안 적어 두었던 사이드 프로젝트 아이디어들을 간단하게 쓰고 싶었던 기술들을 적용해서 빠르게 만들어보고 싶다.
3. 외부 개발자들의 풀을 넓히자
글또 8기에 이어서 글또 9기도 참여하게 되었다.
패스없이 글을 제출하는 것도 목표지만 이번에는 네트워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가 또 하나의 큰 목표이다. 8기 때에는 일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온라인 문화(?)에 더 낯설기도 해서 슬랙에서는 조용히 있었는데 지나고 나니 좀 더 나대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용기내서 아침 인증하는 모닝또
소모임 채널도 만들고, 최대한 댓글도 많이 남기면서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외부 개발자를 만나기에는 X
도 상당히 유용하다. 그리고 역시나 지금까지는 조용히 다른 사람들을 염탐하거나(?!) 조금 더 용기내면 하트 누르는 정도..?ㅎ 였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멘션도 보내고 할 수 있다면 커피챗도 시도해볼까 한다… 일단 트친소부터 올려야지 ( 틧터 하시는 분 계시면 코딩집사를 찾아주세요.. ㅎ )
4. 나를 돌보고 다정해지자
운동
아무래도 공부만 하면 기껏 키워 놓은 근육과 체력이 다시 바닥날 것 같아서 헬스장 3개월을 연장했다. 일단 계획은 아침에 코테 공부하고 운동 갔다와서 샤워한 다음 집에서 아점먹고 바로 공부하러 가는 루트,, 를 짜봤는데,, 일단 해봐야 느낌이 올 것 같다.
잘 먹고 잘 쉬자
사실 먹는게 제일 걱정이다. 음식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것까지,, 큰 시간을 들이고 싶진 않은데 밖에서 먹자니 돈이 많이 들고 대충 때우자니 장기적으로는 컨디션에 악영향일 것 같고.. 으휴ㅠㅠ 일단 가장 쉬운 참치야채비빔밥이나 배추찜, 간장계란밥 요 세 가지를 로테이션 돌려보는걸로,, ㅎ
욱하는 성질을 좀 다듬자,, ㅎ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내 자신 자체가 많이 거칠거칠(?)해진 것 같다. 말투나 행동이 너무 거칠달까..?
내가 그렸던 나의 30대는 이런 모습이 아닌데.. 흑흑
침착하고 우아한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으니까..ㅎ 회사 스트레스가 없을 때 겸사겸사 말투를 좀 다듬어야겠다.
Outro
주사위는 던져졌다. 뭐 원래도 머리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으니 이번에도 몸으로 부딪혀가며 나만의 길을 한 번 닦아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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